휘틀로가 처음에 아셀라를 보고 느낀 감정은 창조국장이라는 위치로서의 순수한 감상이었다. 휘틀로의 눈으로 아셀라는 얼핏 보면 아젬의 일부 같았다. 관련이 없진 않은 눈치라 더 캐묻지 않고 넘어갔지만, 기회가 된다면 꼭 한 번 연구를 해보고 싶은 대상이었다.
휘틀로다이우스에겐 자신이 전투에서 약하다는 점이 못내 아쉬웠다. 눈으로 충분히 살아갈 수 있어 크게 상관은 없었지만, 힘이 필요할 때 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있는 점이 그것이었다. 그러나 휘틀로가 보는 아셀라는 자신의 몸을 던지는 것에 연연하지 않고, 남의 일을 돕는 것을 거리끼지 않으며, 그럴 수 있을 능력이 뒷받침되는 존재였다. 그럼에도 그녀의 눈빛은 너무 위태로워보여서 의외라고 생각하게 됐다.
아젬과 비슷해서 일지, 그녀의 눈빛이 마음에 남았기 때문일지, 휘틀로다이우스는 아셀라에게 빠르게 호감을 느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자신의 시선이 아셀라에게만 가있음을 눈치채게 되었다.
아셀라는 뒤에 종말이 쫓아오는 듯 급하게 엘피스로 왔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좌절감을 느꼈다. 휘틀로다이우스와 하데스로 인해 존재가 보강되고, 그들을 따라다니며 엘피스 곳곳을 다니던 아셀라는 오랜만에 평화롭고 안정적인 감정을 느꼈다.
휘틀로다이우스가 하데스와 회의를 하게 되어 아셀라는 모처럼 혼자 있게 되었다. 남는 시간 동안 주변을 둘러보고 있던 아셀라는 처음 보는 이데아 하나와 전투를 하게 되었다. 이겼지만, 아셀라는 딴 생각을 하던 중 예상치 못한 방식의 공격을 하는 이데아에게 크게 다치게 되었다.
다른 이데아에게 더 공격을 받지 않기 위해 고대인이 지은 건물 외진 곳에서 숨을 고르고 있던 아셀라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휘틀로다이우스를 보고는 자각했다. 자신이 전투에 집중하지 못했던 이유가 이 사람 때문이라는 것을. 그만큼 이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을.
두 사람은 어린 아이가 아니었다. 자신을 향한 언행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는 충분히 알고도 남을 나이였고, 서로가 서로를 호감 이상으로 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다만 둘은 이 사이를 무엇으로 정의하려 하지 않았다. 휘틀로다이우스는 과거의 사람, 아셀라는 미래의 사람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것을 둘은 알고 있었다. 입 밖으로 나오면 돌이킬 수 없을 말이기 때문에 둘은 말 없이 서로에게 의지하곤 했다. 그렇게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 시간이 흘렀다.
닿으면 부서질까 전전긍긍하던 관계의 끝은 좋지 못했다. 아셀라는 자신이 여기에 온 목적이 무엇인지 말했고, 그에 화답이라도 하는 듯 메테이온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휘페르보레아 조물원 끝에서 헤르메스를 막아보려 했지만, 그가 작동한 카이로스로 인해 둘은 갑작스럽게 이별하게 됐다. 아셀라는 다시 휘틀로를 만나기 이전의, 종말에서 세계를 구해야 할 영웅이 되어있었다.
아셀라는 절망했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그가 좋아하는 별을 지키고 싶었고, 갑작스런 상황에 인사도 못했던 그에게 당신이 지키고 싶었던 별을 지켰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녀에게 휘틀로다이우스라는 사람은 그런 존재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모든 원동력이 되는.
울티마 툴레에서 아셀라는 모든 동료를 잃은 채 혼자 잔해별 끝에 도달했다. 아젬의 소울 크리스탈로 하데스와 휘틀로다이우스를 소환했고, 잔해별 아래는 엘피스 꽃으로 뒤덮였다.
그러나 아셀라는 오랜만에 만난 휘틀로 앞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것이 정말로 마지막임을, 가지말라고 붙잡고 싶어도 그럴 수 없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둘 사이의 현실이 너무 멀었다. 조금의 틈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지독한 현실 속에 아셀라는 고개를 떨군 채로 울기만 할 뿐이었다. 눈물이 떨어진 자리에 있던 엘피스 꽃이 붉게 물들었다. 휘틀로다이우스가 셋이서 모험을 하자는 말을 할 때도 고개를 들 수 없었던 그녀는 문득 그의 아래에 있는 엘피스 꽃이 붉게 물들어 있는 것을 보았다. 자신의 아래에 있는 꽃과 같은 색깔이었다.
아셀라는 고개를 들고 휘틀로를 바라보며 그녀가 할 수 있는 가장 밝게 웃어주었다. 먼 미래에 다시 만나 즐겁게 지내자는 의지를 그 웃음에 담았다.